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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절단장애인 창촌(蒼村) 김경배 님

인터넷시인 김경배님

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 1999년의 세계적 인터넷 사용자는 1억 4천만 정도였고, 2000년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보다 2배 가량이 많아진 3억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는 물론 세계 곳곳의 지구촌 소식도 접할 수가 있고, 요즘은 대통령도 당선 시킬 만큼 인터넷의 힘이 크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도 인터넷 사이버 세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창촌(蒼村) 김경배( 49) 씨이다.

김경배씨는 양손을 사용할 수 없는 양 상박 절단장애인으로, 후천적 사고에 의해 장애를 입게 되었다. 김경배님과의 첫번째 만남은 지난 9월. 1박 2일의 ‘한국 절단장애인협회 준비모임’에서 였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여러번의 전화통화와 메일 때문인지 만남이 어색하지 않다.

내가 만난 몇몇 의수하신분들, 특히 양손 의수인 사람들은 밥도 옆에서 먹여 줘야 하고,옷도 입혀 줘야 하고, 모든 일상 생활을 옆에서 도우미가 해주는 줄 알았다. 사실 그런 모습들만 봐왔고….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창촌 김경배님은 혼자서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핀다, 컵에든 물도 의수로 들고 마시고, 음식도 혼자서 잘 드신다.

분명 이렇게 하기까지 힘든 시간과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의수를 하고 가족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주 기본 적인 생활도 할 수 없었죠. 그러다 보니 자꾸 내자신이 나태해 지는 것 같고,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활하는 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물어물어 광주의 어느 누구를 찾아갔더니 그 사람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된다고 말을 해줬어요. 그후 집에 돌아와 정말 많이 힘들게 의지에 맞추어 생활하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하는데. 눈에 그려진다. 들었던 컵을 수십번 떨어뜨리며 깨트리며 연습했던 모습들이….

김경배님은 일상적인 모든것을 나름 대로의 노하우로 해결한다고 한다. 세수하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문제, 그리고 옷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입고 벗는 데 무리가 없다. 예를 들어 단추부분을 모두 ‘찍찍이’라는 것으로 교체해 달아 옷을 옷걸이나 의자 뒤에 옷을 걸쳐놓고 양팔을 넣고 그냥 마무리하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김경배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 스스로가 ‘나는 못해’ ‘나는 할 수 없어’할 때 김경배님은 가족이든 누구이든간에 조금이라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사고 당시 창촌 김경배씨의 나이는 43살. 산재 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이전에는 촉망받는 전문 엔지니어였고 공장 최고 관리자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근무로 인해 수원으로 이주를 해 30여 년을 살았다. IMF에는 중소 제조업체의 공장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어 사고 당일 외국인 연수생들에게 기술 지도를 하기 위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나갔던 것이 보조자의 순간 부주의로 인해 대형기계에 그만 양팔이 눌려 절단을 해야만 했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당한 큰 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을 뿐 아니라, 당시 중,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남매에게 아버지의 불행한 장애는 행복한 가정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장애를 입게 되자, 주변 친구들도 멀어지고, 더욱이 경제적, 사회적 지위도 크게 흔들려 한때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 5,6시간 컴퓨터와 씨름을 하며, 인터넷의 이곳 저곳 웹 서핑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시를 습작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다른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보들을 탐색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창촌 오두막 홈페이지, doldol25.netian.com)에 담아서 방문 하는 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창촌(蒼村)이라는 호는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에서 아버지의 고향을 호로 사용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창촌 김경배님께 계획을 묻자 “앞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형편이 나아진다면 같은 공감대, 똑같은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주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장애인에게는 같은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최고의 위로자가 될 수 있다는 건데, 맞는 말이다.

지금 김경배님은 수원에서 부인과 간호사로 일하는 딸, 군복무 중인 아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보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것은 한창 예민한 시기(사춘기와 대입준비)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매가 아무 탈 없이 착하게 잘 자라주었다는 것에 늘 고맙다고 한다.

사실 큰딸은 유아교육과를 합격했다가 조부모의 병환과 아버지가 장애인인 점을 감안해 다시 간호학과를 지원해 졸업을 한 후, 현재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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